삼성전자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대만 TSMC가 중국 난징에 12인치(300mm) 팹(공장)을 추가 건설한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파운드리 수요가 폭발하는 와중 신규 투자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갈 길을 잃은 중국 내 시스템 반도체 수요를 잡겠다는 복안도 깔렸다.
TSMC. /로이터 연합뉴스
24일 대만중앙통신사(CNA)에 따르면, TSMC는 중국 난징 공장에 12인치 팹을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TSMC 난징 신규 팹은 12·16나노(nm·10억분의 1미터) 핀펫(FinFET) 공정으로 추정된다. 이번 투자로 난징 팹 생산량은 웨이퍼(반도체 원판) 기준 월 2만장에 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TSMC는 대만중앙통신사에 "난징 팹 확장을 위한 특별한 계획은 없다"고 답했지만, 현재 파운드리 시장이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만큼 확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이다.
TSMC 난징 신규 팹은 10나노 이하 초미세공정은 아니다. 삼성전자와 TSMC가 5·7나노 초미세공정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시스템 반도체 대다수는 10나노 이상 구세대 공정에서 만들어진다. TSMC는 지난 3분기 매출 57%를 10나노 이상에서 거뒀다. 16나노 공정에서만 매출 18%를 뽑아냈다. IC인사이츠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 시점 글로벌 웨이퍼 생산능력의 52%가 20나노 이상에서 운용 중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은 세계적 호황을 맞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ICT(정보통신기술) 기기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10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제조가 가능한 삼성전자·TSMC는 주문이 1년가량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공정에 머물고 있는 미국 글로벌파운드리·한국 DB하이텍 등도 이미 생산능력을 100%에 가깝게 운용 중이다. 인텔도 10나노대 진입이 늦어지며 공급이 부족해지자 구 공정을 전문 파운드리에 맡기고 있다.
파운드리 수요가 전방위적으로 크게 늘자, 구 공정인 TSMC 난징 팹도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2017~2018년 순손실을 기록했던 TSMC 난징 팹은 지난해 순이익 4520만달러(약 500억원)를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은 5억6670만달러(약 6300억원)로 2018년보다 170% 늘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위인 중국 SMIC는 최근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SMIC 홈페이지
미·중 무역전쟁도 중국 내 파운드리 신규 투자를 자극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를 블랙리스트(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MIC는 시장 점유율 4%대의 세계 5위 규모 파운드리로, 매출 대다수가 중국 자체 물량에서 나온다.
제재 대상에 오르면 신규 반도체 장비와 기술 도입이 막힌다. 파운드리로서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중국 내 외국 파운드리에 물량을 우선 공급하도록 ‘현지 지도’에 나서고 있다. 외국 파운드리 기업을 중국 편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초미세공정 경쟁이 주목 받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 주류는 10나노 이상이고, 마이크로미터(μm·백만분의 1미터) 시스템 반도체 제작도 계속되고 있다"며 "TSMC가 SMIC 등 중국 기업이 타격을 받는 틈을 이용해 중국 내수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